새로운 방식의 '도를 아십니까?' by 제닉스

나는 지금 약속 시간을 약간 늦은 상태로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나는 정시 형 인간이다. 이 무슨 말이냐면, 약속이 있을 때, 좀 일찍 나가거나 늦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약속 시간 정시에 맞춰 가도록 노력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지하철 운행 시간이나 버스의 운행 시간, 목적지까지의 소요시간을 미리 조사해서 그에 맞게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나에게 약속 시간을 어기게 만드는 요소는 보통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로 교통 체증. 요즘에야 버스 정보 시스템도 있고, 지하철은 정시에 움직이니 이럴 일이 별로 없다고는 하지만 오전 같은 경우 1호선은 지하철도 '자주' 막힌다. 버스는 말 할 것도 없고.

그리고 두 번째는 당연히 나의 게으름.. 뭔가 다른 일을 하다가 나가야 할 시간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겠다. 이건 뭐 내 잘못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세 번째가 가장 당황스러운 문제인데, 바로 이동 중 '도를 믿으십니까?' 하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다. 나는 만만하게 생겨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사람들을 무지 자주 만나는 편이다. 보통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면 '저 바빠요~' 하고 살짝 고개를 숙인 후에 가던 길을 가곤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첫째는, 할머니. 나는 희한하게 할머니들께서 길에서 무언가를 하고 계시면 '자식은 도대체 뭐 하길래..' 라는 생각이 들고, 할머니들께서 물건을 팔건 금전적 도움을 청하시건 거의 들어주게 되는 편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우. 스무살 땐가 한번은 도를 믿냐는 사람을 따라가 본 적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정말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해서 그랬다. 내가 따라간 곳은 허름한 상가 건물 2층에 간판도 없는 사무실 이었는데, 그 곳에는 거울과 불상, 여러 개의 촛대와 이상한 함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가자마자 다짜고짜 불상에 절을 시키더니 가진 물질을 다 털어버려야 도에 접근할 수 있다면서 지갑에 있는 모든 돈을 함에 넣길 요구했고, 처음엔 거부했지만 옆에서 달건이 형님들이 나오시는 바람에 지갑의 돈을 모두 털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뭐 그땐 가진 돈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 판타스틱한 경험을 한 이후로 도를 믿냐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피해 왔는데, 아직도 내가 뿌리치지 못하는 부류가 있다. 바로 '화려한 말빨'로 접근하거나 '창의적인 수법'으로 접근하는 경우인데, 한번은 인천 지하철 선학역에 지하철을 타러 가고 있는데 갑자기 개량 한복 입은 사람 한명이 나를 잡아 세우고는, 순식간에 같은 옷을 입은 사람 네 명이 모여들더니 길바닥에서 넙죽 나에게 큰 절을 하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 쳐다보고, 나는 당황하고. 앞에서 절 한 사람 한명이 일어서더니 나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따라 가자고 하는 거다.-_-;;

물론, 이전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안 간다고 버텼고, 아차 하는 순간 개량한복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서 '신의 선택'과 관련하여 선 자리에서 약 한시간 반 동안 강의를 들어야 했다.

또 한번은 담배를 사러 슬리퍼 끌고 반바지 입고 집 앞 편의점엘 나가는데 왠 여자애들 둘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상당히 다급해 보여서 쫓기는 게 아닌가 하고 '왜 그러세요?' 라고 묻자 여자애들 둘이서 나를 잡고 다짜고짜 '시종자님!' 이라고 하는 거다.

아니 이건 또 왠 황당한 시츄에이션. 그 아이들은 자신들을 '영문을 공부하는 시종자 집단'으로 소개하면서 내가 우리 집안의 시종자이며, 시종자 끼리는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자신들을 따라가서 영문을 들어야지 영문을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 집안에 우한이 생긴다고 했다. 절대 나에게 나쁜 짓을 하려는 것이 아니며, 영문을 듣지 않으면 어머니께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하도 다급하게 설득을 하길래 얘들은 또 뭐하는 애들인가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들은 나를 갑자기 집 근처의 지하철역으로 데려갔다.
나는 2,500원 들고 담배 사러 나왔다가 담배를 사고 나서 잡혔기 때문에 가진 돈은 없었지만 핸드폰 고리에 T머니가 붙어있었기 때문에 그걸로 지하철을 타고 따라갔다. 지하철로 약 4정거장정도 이동해서 내려서 약 300미터쯤 이동하자 예전과 비슷한 허름한 상가건물이 나타났고, 예전의 공포가 엄습 했으나 다행히 안에는 대학생들 밖에 없었고, 이정도면 다이다이 떠도 해볼만 하다(?)라는 판단 하에 안으로 들어갔다.

안의 구조 역시 비슷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나에게 제사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만 2천원 이라고. 그래서 나 돈 없다고.. 담배 사러 나왔다가 잡힌 거라고 말하자 그러면, 자신들이 대신 내 줄 테니 내일부터는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다.(내일 또 오라고-_-) 그러더니 한복 같은걸 주면서 갈아입으라고 해서 싫다고 했더니, 그럼 옷 위에 걸치기라도 하라고 했다. 역시, 옷 위에 한복을 대충 걸치고 절을 한 후에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네이버에서 '시종자'를 검색했더니 나와 같이 당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더라. 역시 목적은 돈인 듯 했다. 네이버에는 '시종자'의 뜻부터 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이 있었다.

그렇게 얼마가 흐르고 오늘. 충무로에 4시까지 가야해서 시간에 맞게 버스를 타려고 집에서 나왔는데 또 비슷한 여자애들이 다가왔다.-_-; 그러더니 너무도 같은 패턴으로 '어머! 시종자님!' 이라고 외쳤고, 역시 같은 패턴으로 나에게 나는 시종자이며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나는, '전에 한번 잡혔었어요~' 라고 했더니 시종자가 맞기 때문에 계속 잡히는거라고 하면서 영문을 공부해야 한다고. 집안이 위험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작은 눈으로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영문을 아셔야 해요, 영문을 아세요?' 라고 묻길래 나는 지식인에서 본 영문의 뜻을 읊어주기 시작 했다. '자고로 영문이라 함은.....' 그녀들은 벙 찐 표정으로 다음 대사를 생각하려 하는 듯 했으나 당황해서 말이 헛 나오기 시작했고 '시종자의 의미를제대로 깨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역시 지식인의 힘을 빌어 '자고로 시종자라 함은...'

그렇게 설명을 해도 또 따라가자고 하길래 내가 '사실 저도 영문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고는, '저도 시종자임을 알아봤으나, 요즘 하도 사기꾼들이 많아서요, 진짜인지 확인이 필요 했습니다. 아가씨 눈빛을 보니 진짜가 맞는 거 같아요, 실례 했습니다. 저도 공부하는 영문 수도원이 있는데 같이 한번 가 보시죠.' 그러자 그녀들은 '거기가 어딘데요?' 라고 물었고, '충무로요.' 라고 대답하자 바쁘다며 자리를 뜨려고 하는 것이었다. 한명은 이미 몇 걸음 달아났고, 다른 한명을 다급하게 잡아 세우고 '같이 가 보시지요?' 라고 하자 두 손을 모으며 인사하는 시늉을 하더니 '열심히 수도 하세요' 라고 하고는 떠나버렸다.

덕분에 나는 선 자리에서 약 10분을 소요했고, 3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나는 다음 버스를 탔고, 약속 시간은 늦었지만 아까 그 아이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계속 웃음이 나온다. 역시 지식인의 힘은 대단했고, 아는게 힘이다 라는 옛 말의 의미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사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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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성의 2009/12/14 01:13 #

    ▒ 제닉스의 사고뭉치 ▒ : 새로운 방식의 '도를 아십니까?'... more

  • 앤소리오의 2009/12/14 15:56 #

    크리스트교 믿으면 쪽을 버려서라도 '사탄아 물러가라! 예수께로 돌아가거라!'라고 하면 쪽팔려서라도 도망침니다. 홧팅... more

덧글

  • 그라드 2006/06/12 16:20 # 답글

    마지막 대처, 멋지십니다!!! 저도 시종자랍니다 (~-_-)~
  • nyxity 2006/06/12 16:42 # 삭제 답글

    우하하. 전 그냥 일본인인척 합니다.
  • 미친과학자 2006/06/12 17:14 # 답글

    오오 한번 다하시더니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템포가 무척 빨라지셨군요 ;ㅁ;==b
  • 冷箭 2006/06/12 17:18 # 답글

    멋지게 한방 먹이셨네요.
  • 리에 2006/06/12 18:11 # 답글

    저도 도를 공부하는 분들께 무지 잘 잡히는 타입인데(...) 그런데 잡는 분들이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셔서 가끔은 어 정말일까? 싶기도 해요.
    제가 주로 듣는 이야기는 '목소리에 힘을 타고나셨어요!' 이거랑 조상님께서 어쩌고저쩌고.. 이 두가지인데 서울에서 잡혔을 때도 저 이야기 하고 본가(전남)에서 잡혔을 때도 저 이야기를 하니 정말 내가 그런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더군요;
  • 멀더 2006/06/12 18:19 # 답글

    전 화내는 사람도 봤어요. @.@
  • 머스타드 2006/06/12 18:39 # 답글

    저도 화내는 사람 만났어요. 안가겠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화를 내더군요. "우리가 시간이 남아서 이러는 줄 아세요?" 라고 하면서. -_-;
  • 숏달 2006/06/12 18:50 # 답글

    "도를 아십니까?" 평소에 정말 궁금했던 내용입니다. 가끔 누군가 유심히 날 쳐다보면서, 범상치 않는 기운을 가지셨습니다.. 로 말을 시작하는 경우를 많이 당했거든요. 대충 바빠요, 관심없어요, 이렇게 지나쳤는데, 가면 지갑을 비워야하는군요. 제닉스님땜에 도를 하나 깨친느낌입니다. ^^
  • 2006/06/12 20: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엽기매냐 2006/06/12 20:43 # 삭제 답글

    역시 사람은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처음엔 속절없이 당하다가 나중엔 역공을 하기도 하죠...

    제닉스님을 중심으로 종교가 생긴다면 많이들 몰릴듯?
  • 마리 2006/06/12 21:26 # 답글

    글을 너무 재미있게 쓰셔서 일단 킥킥 웃으면서 읽었네요. 시종자는 첨 듣는 얘기지만 도를 아십니까,는 저도 예전에 한 번 심각하게 잡혀간 적이 있습니다. 실수로 삐삐 번호까지 알려줘서 꽤 오래 귀찮았던 적이 있었죠. 첨에 말 걸때 아무개야, 하면서 아는척을 하다간 어머 사람 잘 못 봤네요 하면서 말을 걸더니 지하철까지 따라 타는 바람에 장장 삼십분에 걸쳐서 시달리다가 정신이 혼미해져 따라가게 되었었거든요. -.-;
    이젠 세파에 시달려서그런지 그런 말 거는 사람이 전혀!없습니다. 이거 잘된걸까요? ^^a
  • 아모이 2006/06/13 00:17 # 답글

    도를 아십니까? 하면..
    도통했습니다. 하고 지나쳐버리는.. 후훗~!
  • 하늘나레 2006/06/13 12:12 # 삭제 답글

    음, 이제 '도를 아십니까'는 한물간 포교활동(?)이 되벌렸군요. 그건 그렇고 그런 분둘을 뿌리치기 위해서 지식in을 이용해 공부까지 해야하디니... 이런건 이오공감 가줘야 하는데 험... 혹시 sk에도 '도를 아십니까?'의 회원이 있는 것은...
  • tanin 2006/06/13 16:12 # 삭제 답글

    저기요, 지나가던 사람입니다만, 여섯번째인가 일곱번째 문단에 둘러쌓여서-> 둘러싸여서'가 맞습니다. 국어사전 한 번 찾아보시길-.-
  • Paromix 2006/06/13 18:36 # 답글

    제닉스님의 센스에.^^
  • 다스베이더 2006/06/14 01:46 # 답글

    전 이렇게 대처합니다.
    도인 : 도를 아십니까?
    저 : 포스를 아십니까?
    도인 : 네?
    저 : 모르시는군요 등 돌려 갈길 갑니다.
  • 소련의부활 2006/06/14 16:18 # 삭제 답글

    중학교나 고딩때는 간간히 당했는데 요즘은 입에서 절로 나오는 격한 말투와 욕설, 그리고 인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짜증나" 포스덕분에 접근을 안하더군요..후후... 예전에 꿈의 궁전이라고 3시간동안 설교듣느라 죽을뻔 했었는데...
  • 하하 이런 2006/06/16 13:33 # 삭제 답글

    제 생각엔 제닉스 님이 특별해 보여서라기 보단...(뭐 진짜로 그분들이 제닉스님이 뿜어내는 화려한 오오라와 특별한 포쓰를 느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ㅎㅎ)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이 믿는 진리를 전달하고 함께 동참하게끔 하고자 하는 욕구는 강한데
    그 접근법이 진화(?), 현대화(?)되지 못함에서 기인하는...일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방법이야 어쨌든 그사람들은 진심일거고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일텐데 그 모습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해 주지 못하고 너무 희화화되고 있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요.
  • 제닉스 2006/06/18 00:32 # 답글

    [그라드] 우리 시종자 가든이라도 하나..ㅎ
    [nyxity] 오. 좋은 방법입니다.ㅋ 저도 나중에 한번 해봐야 겠어요 ㅎㅎ
    [미친과학자] 자주 당하니 노하우가 쌓이더군요. : )
    [冷箭] 예. 흐뭇 했습니다.ㅋ
    [리에] 맞아요, 가끔은 정말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멀더] 저도 봤습니다.ㅋㅋ 일하러 가야된다고 바쁘다고 하면
    '아니 세상에 돈이 전부야!' 이러더군요 ㅋ
    [머스타드] 맞아요, 그런 분들도 계시구요 ㅋㅋㅋ
    [숏달] 예, 지갑을 비우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비공개님] 짧으니까 더 고민되네요 ^^;;
    [엽기매냐] 맞습니다. 사람은 발전하게 마련입니다. 종교도 이미 있어요! 제닉스 신교라고 ㅋㅋㅋ
    [마리] 이야.. 운이 좋으신거 같습니다.
    [아모이] 다양한 대처방법이 있군요 ㅎ
    [하늘나레] 예, 도를 아십니까는 이제 너무 흔하죠 ㅋ
    [tanin]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 하였습니다. 근데 너무 까칠하세요~
    [Paromix] ^^;;;
    [다스베이더] 베이더님 답습니다.
    [소련의부활] 꿈의궁전 ㅋㅋ 대박입니다.ㅎㅎ
    [하하 이런] 정말 진심일까요.. 정말 진심이라면 참.. 더 난감하네요..;;
  • 앤소리오 2009/12/14 15:55 # 삭제 답글

    크리스트교 믿으면 쪽을 버려서라도 '사탄아 물러가라! 예수께로 돌아가거라!'라고 하면 쪽팔려서라도 도망침니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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